읽어보면 복이와요: 율법과 복음I

전도현장에서 십자가 죄사함의 복음을 전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내가 죄인인데요?” 그럼, 꽤 당황스럽다. 구체적으로 누가 죄인인지 내 안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원죄교리”가 무의식 중에 작동해서, “우리가 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원래 죄인이에요”라고 답했다. 내심 “그럼 하나님이 창조실력이 부족해서 실수로 계속 죄인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네요?”라는 질문이 안 나오길 은근히 바라면서…

어느 날 로마서를 유심히 보았다.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 적혀 있는 줄 알았는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로 적혀 있었다! 죄를 범해서 죄인이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이 아니었다.

때론 요한복음 말씀이 기억이 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게 죄인이에요”라고 말했다. 내심 “그럼,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수많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은 전부 지옥에 있겠네요?” 라는 질문이 안 나오길 은근히 바라면서…

죄가 무엇이고 누가 죄인인가? 이것을 모르면 왜 예수님이 필요한지 모르게 될 것 같다. 신앙인으로 살면서도 복음이 정말 “은혜 되지”못할 때가 있다. 말로는 “복음으로 충분해요!!”라고 외치지만 속으로는 아무런 감동이 없다. “여러분, 이제 당신은 복음으로 자유케 되었습니다!!” 라고 웅변적으로 외치며 가르쳤지만, 정작 내 개인의 은밀한 삶에서는 그 “자유”란 게 없었고, 성도들도 그다지 썩 “자유를 누리며” 사시는 것 같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율법을 제쳐 두었기 때문이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캘리포니아 LA에선 독특한 신호등 “법” 이 있다. 빨강과 파랑 불 사이에 노란 불이 켜져도, 비보호처럼, 좌회전을 할 수 있다. 이걸 몰랐을 땐, 노란 불일 때에도 계속 서서 좌회전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뒤에서는 빵빵거리고, 앞에서는 수신호로 손을 흔들어 대던 LA 시민들이 이해가 안되었던 것이다. 다운타운만 나가면 긴장이 되고 운전이 힘들었다. LA시민들이 날 억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법”을 알고 나니, 너무나 자유로왔다. 자유롭게 좌회전을 하며 운전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모르면, 율법이 경고하는 죄를 모른다. 죄를 모르기에 죄의 사슬에 매여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를 말씀해 주는 율법이 없으니, 죄가 아닌 것도 죄인 걸로 착각하고 늘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예루살렘에서 살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이 너무나 자유롭게 삶을 즐기더라는 것이다. 왜 크리스챤인 내 안에는 저 자유가 없나? 비교가 많이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지키면 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 명확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그 법만 지키면 된다고 믿고 사는 것이었다. 그러니 말씀에 기록된 것 외에는 다 자유 의지대로 누리는 것이었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것 조차도 의무가 아닌 자유와 감사에서 지킨다고 말하였다.

그들처럼,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없던 나는 내 나름대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서 성도들과 이웃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목회하면서, 성도들을 내 신앙의 기준으로 잣대 질을 했던 모습이 기억났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율법을 안다면 율법주의가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율법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특히 언약백성들을 거듭거듭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친절하심 (헤쎄드)이 나타나 함부러 성도들을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줄 때에도 얼마나 친절해야 하는 지… 율법은 하나님의 배려와 친절하신 성품을 잘 나타낸다. 이웃에게 돈을 꾸어 주면서, 이웃의 집에 들어가 “음.. 저 TV 괜찮네요, 다 갚을 때 까지 저 TV를 저당물로 가져 가리다!”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신 24:10-13). 돈을 빌린 자가 스스로 저당물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 집 밖에 서 있으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TV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꼭 TV를 봐야만 잠이 드는 아이들이 있는 그 집안의 “필수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의 마음을 어렵게 하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배려와 친절하심이 율법에 나타나 있다.

가버나움에서 반 세겔 성전세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가서 물었다.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안 내느냐?” 베드로는 “내신다” 답하고 집에 들어갔다. 그들의 대화는 집 밖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으로서 집 안으로 들어가 세금 납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베드로 자신도 가난해서 못 내고 있던 성전세… “예수님.. 사실은 저도 납부를 못해서… 혹시 제 것도 좀 빌려 줄 수 있나요?” 라고 말해야 했던 베드로를 본다.

가난한 자는 “돈 빌려달라”고 말하려면 한 차례 폭풍을 통과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그 말을 할까 말까 수십 번도 더 고민하고 결국 수치감과 미안함을 무릅쓰고 그 말을 해야 하기에 하고야 만다. 이런 가난한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먼저” 말을 거신다! 이 얼마나 친절하신 분인가?! 베드로의 어려운 맘을 미리 아시고 베드로가 말하기 전에 먼저 언급하시는 하나님의 친절하신 성품이 예슈아 안에 보인다. 예수님께서 직접 호주머니를 꺼내어 빌려주신 것도 아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볼 때마다… “아… 조만간에 빨리 갚아 드려야 하는데.. 선생님이 언제 갚아주나 기다리실 텐데…” 맴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의 직업인 어부의 일을 통해서- 즉 낚시해서 돈을 꺼내어 주라고 하신다. 율법을 지키신 예수님.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하나님의 성품을 보이신 예수님. 베드로가 전혀 미안할 것이 없게 만드신 예슈아의 친절하심과 배려 그리고 지혜이시다!

반유대주의의 뿌리에는 반율법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반율법주의는 Anti-Law 인데, 헬라어로 “Anti Nomous 불법”이다. 복음을 가장 잘 깨달았던 사도들은 항상 서신서의 결말로 이 “불법의 행위들”을 경고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이단도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이었다면 말세 교회의 이단도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이다. 우리 입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주님의 입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가 나오면 우리는 끝장이다.

사탄은 율법없는 복음, 율법과 선지자가 폐해진 복음을 열심히 가르치게 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의 은혜와 감격을 못 누리고, 성화를 통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복음을 ‘삶과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 ‘이론과 교리’로 전락시킨다.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 (진리=하나님의 말씀= 율법과 선지자=성경) 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의 위치를 찾아내 그 땅 속에 스며들어 있는 보혈이 묻은 흙을 캐서 발라 보라고 한다. 그러면 치유와 자유와 행복이 저절로 발생할 것이라고 속삭인다. 아니면 그 피가 내 몸에 뚝뚝 떨어지는 것을 계속 상상하면서 이교도적인 주술을 읊어보라고 한다. 결국 입으로는 복음으로 자유하다고 외치지만, 경건의 능력이 실제로 내 삶에 나타나지 않아서 영적 우울증에 시달리게 한다.

복음은 “율법의 족쇄” 또는 “율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죄”에서 우릴 해방시켰다. 그래서 그 정죄로부터 자유케 된, 소위 “칭의”받은 우리기에 이제는 더 이상 멍에를 멘 종처럼 아버지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한 “아들”처럼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의 메시지가 아닌가?

칼빈은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행위= 성화의 삶으로 연결한다고 가르친 것 같다. 그래서 신학자 Donald G. Bloesch는 칼빈의 패러다임을 ‘율법- 그리스도’가 아니라, ‘율법 – 그리스도 – 율법’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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