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semitism in the Gospel of John 8:44 You are from father of the devil?” 요한복음의 반유대주의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요 8:44)

Q.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자기에게 따지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아버지 마귀에게서 태어났다” 라고 하셨습니다. 고로 유대인들은 마귀의 자녀 아닌가요?

Q: In John 8:44, Jesus said to the Jews during the dispute, “you are born of your father devil,” therefore, the Jews are children of the Devil, right?

A. 아니다. 그것은 오역에서 발생한 오해이다. 원어로 직역하면 “너희는 마귀의 아비로부터 있다 (υμεις εκ πατρος του διαβολου εστε)” 이다. 여기에서 “너희의 (υμων: your) “라는 단어와 “태어났다 (γενναω: be born) “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이 마귀의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인정하셨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8:37)

A: No. It is a mistranslation and misinterpretation. The literal translation of the original Greek text will be, “you are from father of the devil.” There is no “your: υμων ,” and “born: γενναω” in this verse. Jesus has already acknowledged that they were the sons of Abraham, not of the Devil. “I know that you are Abraham’s seed.” (Jn 8:37)

Q. 그러나, 논쟁 초반에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마귀의 자손이기에 마귀가 행한 일을 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8:39-41)

Q: But at the beginning of the dispute, Jesus made sure that they were doing the works of the devil because they were the seed of Devil, not of Abraham. “If you were Abraham’s children, you would do the works of Abraham. But now you seek to kill me, a man that hath told you the truth, which I have heard of God: this did not Abraham.” (John 8:39-41)

A. 예수님이 여기에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이라고 할 때 그 ‘자손’은 지금까지 썼던 단어와 다른 단어를 쓰고 있음에 주목하라. 유대인들이 33절에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 때 “자손”은 “스페르마 σπερμα: seed:씨” 이다. 37절에 예수님이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 (스페르마)인 줄 아노라”에서도 같은 단어를 쓰셨다. 그런데 39절에 와서는 자손을 “τεκνον: children: 아이들”이라고 하셨다.

A: Pay attention to how Jesus chose a word when he said, “If you are Abraham’s CHILDREN.”  So far, in the dialogue, they used a word “SEED.”  For example, in verse 33, the Jews said, “We are Abraham’s SEED” which is ‘sperma’ in Greek and later Jesus said, “I know you are Abraham’s SEED (sperma).”(v.37)  Yet at this point, Jesus used ‘CHILDREN’ (teknon in Greek) in verse 39. “If you are Abraham’s CHILDREN…” Why?

왜일까? ————————————————————– Why?

지금까지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로서 ‘혈통적’ 아비ㅡ 자손의 관계를 인정했는데 이제는 또 하나의 아비ㅡ 자손관계가 있음을 보이신다. 바로 보고 듣고 ‘영향력을 주고 받는’ 관계이다. “씨”는 혈통적인 자손을 강조하는 단어이지만, “아이들”은 아비의 모습을 보고 들은 대로 그대로 따라하는 백지와 같은 존재임을 강조하는 단어다.

Without denying their status of being a biological covenant family, now Jesus uses a different perspective of a family.  There are two types of father- son relationship: a biological one and an influential one.  SEED is a word that emphasizes a biological family, yet CHILDREN is a word that highlights an innocent stage of a person when they are easily influenced by their father and do what they hear and see from their father.       

다시말해, 예수와 논쟁했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지만,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아닌 마귀의 영향력을 받은 자들임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듣고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영향력을 주고 있었음을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내 말이 너희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또 38절에서도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아이들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행하듯이 그들은 마귀의 음성을 듣고 영향을 받아 그대로 행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그들의 심리적 행동에 영향을 준 마귀의 아들됨을 암시하신 것이다.

In other words, although the Jews who were disputing with Jesus belonged to a biological family of Abraham, they were influenced by the Devil, not by Abraham. They were acting according the words of devil that they heard, not the word of God that Jesus and Abraham has delivered to them.  Jesus expressed this condition in this way, “you seek to kill me, because my word hath no place in you.”  Also in verse 38, “I speak that which I have seen with my Father: and you do that which you have seen with your father.”  As the children do what they have heard and seen from their father, they attempted to do what they heard from the devil. So Jesus alluded to their sonship of the devil who influnenced on their psychological behaviors.

Q.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을 들려주는 자를 ‘아비’로, 그 말씀에 영향을 받아 그대로 행하는 자를 ‘자녀’로 표현한 곳이 있나요?

Q: Then, is there any place in the Bible where someone who gives word is regarded as a father and those who receive, influenced by, and act by the word are regarded as sons or children?

A. 물론이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말씀 λογος”이 “살 σαρξ: flesh”이 되셨다고 했다 (요1:14). 즉,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살과 피가 되어 삶 (Life: 생명)이 되었다. 다시말해 온전한 순종이다. 요한 복음 곳곳에 “나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일하며 행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말씀을 주신 분은 아버지요, 그것을 행하는 자는 그 아들이 된다는 사도요한의 말씀의 신학을 1세기 헬라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 (Philo)도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A: Of course. The author of John’s gospel declared that Jesus as the son of God is “the Word became flesh.” (Jn1:14). It means that the word of God not only remained in his head but also became flesh and blood of his LIFE! To put it simply, He made his entire life to obey to the word during his lifetime. Throughout the gospel of John, Jesus often said, “I speak what I hear from my father, I do what I see from my father,” etc. Father gives words and son acts out the words. This Logos theology is also found in the writings of Hellenistic Jewish philosopher Philo in the 1st century who said, ” Logos is the son of God.”

예수님은 또한,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고 하셨다 (요 10:35-36)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이 이해하셨던 ‘하나님의 아들됨’ 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과 직결되어 있다. 요한도 그 로고스를 받고 그의 이름- “하나님의 말씀” (계 19:13) 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언했다.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Jesus said, “If he called them gods to whom the WORD OF GOD came—and Scripture cannot be broken- do you say of him whom the FATHER consecrated and sent into the world, ‘You are blaspheming,’ because I said, ‘I am the SON of God’?” (Jn 10:35-36) In light of this verse, Jesus’ understanding of ‘sonship of God’ is directly related to the word of God the Father. John himself declared that those who receive the Logos and believe his name which is ‘the word of God’ (Revelations 19:13) can have a right to become sons and daughters of God. “to all who did receive him,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Jn 1:12)

또한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라고 하셨다. (마 13:37-39a) 마태복음에서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데 그 말씀에 순종의 열매를 맺는 자들은 천국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가라지, 즉 마귀의 씨가 공존하는 데, 마귀의 말씀을 받아 불법을 행하는 자를 악한 자(마귀)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한다. 성경은 “아버지-아들”의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지지함이 확실하다. 말씀을 주시는 분은 아버지가 되고 그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자는 그 자녀가 되는 관계이다.

In the parable of the weeds, Jesus said, “the one who sows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The field is the world, and the good seed is the sons of the kingdom. The weeds are the sons of the evil one, and the enemy who sowed them is the devil…” (Mt 13:37-39a) The good seed symbolizes the word of God in Matthew’s gospel, and those who bear fruit of obedience out of the word of God are the sons of the kingdom. Whereas, the weeds – the seeds of devil coexist among them, and they are the sons of devil because they receive the word of devil and do the works of devil – to break the Law of God. It is obvious that the Bible supports a new type of “father-son relationship” which can be established between two parties: the one who gives word becomes a father and the one who receives and obeys the word becomes children.

정리하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8:39b, 41a) 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현재 너희는 너희의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과 아브라함을 따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아브라함의 말씀대로 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신, 너희들은 지금 마귀의 영향을 받아 마귀의 말을 듣고 행하고 있다. 이것이 마귀를 너희 아버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가 너희 유대인들을 낳은 너희의 아버지다”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To sum up the matters, when Jesus said, “If you were Abraham’s children, you would be doing the works Abraham did … You are doing the works your father did.” (8:39b, 41a), he meant “you are not currently following your real father who is GOD and Abraham because you are not doing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and word of Abraham. Instead, you are currently influenced by the devil and hear him, and do the words of devil. That makes devil your father! ” Jesus did not mean, “the devil is your father because he gave birth to you Jews.”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47절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여기에도 “속하다 : belong”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다. 그저 “εκ: from~로부터 있다” 만 적혀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뜻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있지 않다”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영향력을 받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행동을 주관하는 음성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쪽에서 온 것이기에 마귀 쪽에서 ‘아버지-아들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암시하신 것이다.

In this sense, Jesus spoke in verse 47, “Whoever is from God hears the words of God. The reason why you do not hear them is that you are not from God.” What does it mean to “be from God?” It means “to be from the words of God” or “to be influenced by God.” He alluded to the fact that ‘father-son relationship’ was being formed on the devil’s side, not on God’s side because the words which motivated them to act like that came from the devil, not God.

[강단 주석집]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주님은 마귀의 아비됨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증오하고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도덕적 종교적 아비됨을 다루고 있다.

“Our Lord was not dealing with the parentage of the devil, but with the moral and religious parentage of those Jews who were manifesting the most bitter antagonism to himself and plotting his destruction.” (The Pulpit Commentaries)

Q. 그러면, 예수께서 “너희는 마귀의 아비로부터 있다” 고 말씀하셨다면, 마귀도 아버지가 있나요? “마귀의 아비”는 누구인가요?

Q: If Jesus said, “you are from father of the devil,” does the devil have a father? Who is the father of the devil?

A. 신약은 유대인들이 적었다. 구약 (히브리 성경) 이 성취되고 있는 현장을 적은 것이 신약이기에, 신약은 히브리적 관점으로 보아야 풀린다. ‘마귀 (디아볼로: διαβολος)’는 히브리어 ‘사탄 (שטן: Satan)’의 헬라어 번역이다. 유대인들은 크리스챤들이 마귀를 너무 두렵고 강력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인간의 타락을 조종하는 어떤 강력한 신적 인격체나 영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적 관점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악한 생각과 의지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요, 인간의 마음을 미혹하고 완악하게 하는 수행자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로 간주된다. 기독교에서 “마귀”는 늘 고유명사 (Proper Noun) 으로 쓰이나, 유대교에서 “사탄”은 종종 “보통명사 (common noun)”으로 쓰인다는 사실이다!

A: The New Testament (Christian Bible) was written by the Jews. It is a book which records how the Hebrew Bible (Old Testament or Tanakh) has been fulfilled. Therefore, the N.T. must be interpreted by the Hebrew perspective. The devil which is διαβολος is a Greek translation of Hebrew word, שטן Satan. Many times, the Jewish people don’t understand why Christians lift up devil to be so powerful and fearful spiritual being who contols all human corruptions. However, in Jewish perspective, Satan includes human evil thought or will that resist the will of God and disobey the word of God, thus it is regarded as one of the agents to execute God’s judgment or disillusioning and hardening of human hearts. In fact, in Christianity “the Devil” is always understood as a Proper Noun but in Judaism, satan is often used as a common noun!

예를 들어, 민수기 22:22절에,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모압 왕에게 갈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섰는 데, 그 “막으려고”가 바로 히브리어 “사탄”이다. 사탄은 “대적하다 adversary” 의 뜻을 가진다. 열왕기상 11:25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두 사탄 (대적)을 일으키셨는데 하닷과 르손이다. 사탄은 그저 ‘대적자’라는 보통명사일 뿐이며 그 사탄의 임무는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이었다.

For example, Numbers 22:22 records that Balaam rejected the will of God and was going to the king of Moab, the angel of the Lord took his stand in the way as an adversary. The Hebrew word for “adversary” is שטן satan. 1 Kings 11:25 records that God has raised two satan (שטן : adversary), Hadad and Rezon against Solomon. The Satan is just a common noun to mean “adversary,” and it’s job was to go against Israel and hate Israel.

신약도 히브리적 관점으로 말하고 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딤전 3:11) 에서 “모함하다: slander”가 바로 “마귀: diabolos” 이다. 디모데 후서 3:3과 디도서 2:3에서도 “모함하는 자”가 “마귀”라는 단어이다. 유일한 악의 왕 “마귀”로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모함하는 자”의 뜻을 가진 보통명사라는 것이다.

The N.T also talks about the devil in Hebrew perspective. In 1 Timothy 3:11 which says, “Their wives likewise must be dignified, not slanderers, but sober-minded, faithful in all things,” the term “slanderer” is “διαβολος” which is “devil.” 2 Timothy 3:3 and Titus 2:3 also used the word ” διαβολος” as “slanderer.” Not as a Proper noun to mean an unique powerful king of evils, rather as a common noun to mean “someone who slander.”

정리하면, 요 8:44절의 “마귀의 아비 father of the devil” 라는 어구는 “모함하는 자의 아비” 또는 “거짓의 아비” 또는 “증오하는 자의 아비”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귀를 낳은 어떤 아버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모함과 증오 그리고 거짓이 바로 마귀인데” 그 마귀의 기원으로서의 아버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 기원은 바로 인류 최초의 증오자요 살인자인 가인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To sum up, the phrase “father of the devil” in John 8:44 can be translated as “father of the slanderer,” or “father of lier,” or “father of hater,” etc. It does not mean that there is a certain father who gave birth to devil, rather it means that “the devil as slanderer, hater and lier” has a father as origin. It’s origin is the first hater and murderer Cain. The author of John’s gospel explains more specifically on this matter in the epistle of 1 John.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가인같이 하지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일 3:9-10, 12)

“No one born of God makes a practice of sinning, for God’s seed abides in him; and he cannot keep on sinning, because he has been born of God. By this it is evident who are the children of God, and who are the children of the devil: whoever does not practice righteousness is not of God, nor is the on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We should not be like Cain, who was of the evil one and murdered his brother. And why did he murder him? Because his own deeds were evil and his brother’s righteous.” (1 John 3:9-10, 12)

하나님의 씨,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가인의 행위를 따라하는 자는 마귀의 자녀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귀의 말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Those who have the seed of God hear and practice righteousness, and they belong to God as children of God. Whereas, those who disobey the words of God but practice the deeds of Cain are the children of the devil, being influenced by the words of the devil.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마귀로부터 태어났다, 마귀가 너희를 낳은 아버지다” 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을 오해하여 반유대주의가 나왔고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 유대인을 핍박하고 죽임으로 마귀의 자녀들로 전락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마귀 (=불순종)의 아들들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도 그들을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에베소서 2:2에서 표현하였다. 심지어 베드로도 “사탄”으로 불려진 적이 있다. 십자가를 향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것을 순종하려던 예수님의 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Therefore, Jesus did not say to the Jews, “You are born of the devil, and the devil is your father who gave birth to you.” From misunderstanding of this verse, antisemitism came out and so many Christians became children of the devil by persecuting and killing the Jewish people who are the covenant people of God. Jesus taught that anyone who disobeys the words of God can become the children of devil (disobedience). In this sense, the apostle paul also described them as “the sons of disobedience” in Ephesians 2:2. Even apostle Peter was once called “Satan.” Why? He was blocking the way of Jesus who was obeying God to be crucified because it was the will of God.

Q. 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막고, 예수r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막는 것이 마귀의 생각이었다고요? 그럼 왜 예수는 요한복음 8장의 논쟁에서 예수를 죽이기 원했던 유대인들을 마귀의 일들을 하려고 한다고 했나요? 앞 뒤가 안 맞잖아요?!

Q: What? It was the thought of the devil to prevent the crucifixion and to keep Jesus from being killed on the cross? Then, why Jesus told the Jews who wanted to kill Jesus in John chapter 8 that they were doing the work of their father devil? It is discrepant!

A. 아주 예리한 질문이다. 이것은 복음의 비밀이다. 예수는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의 절기 (모에드, 히) 에 따라서 사역하시고 죽으셔야 했다.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유월절 전에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으므로 마귀의 생각이었다.

A: It’s a sharp question. This is the secret of the Gospel. Jesus had to work and die according to the Biblical season (Moed in Hebrew) of the LORD to fulfill the Scriptures. It was God’s will for Jesus to die as the lamb of God on Passover; to die before the season was not God’s will, therefore the devil’s thought.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사복음서 모두 예수가 ‘비유’로 유대인들을 가르치신 이유는 이사야 6:9-10절을 성취하기 위함임을 말한다. 즉 유대인들의 “눈을 멀게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라” (요 12:40)는 사명을 이루시려고 유대인들에게 비유로 천국비밀을 가리셨고 그 결과 마음이 완악하게 되었다. 그래야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넘겨지기 때문이다.

There is anothe reason. All four gospels tell that the reason Jesus taught the Jews in parables is to fulfill Isaiah 6:9-10. It was “to blind their eyes and harden their hearts” (John 12:40). That’s why he taught the Jews in parables to conceal the secrets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as a result of that, the hearts of Jewish people were hardened so that they would deliver Jesus to the crucifixion.

복음서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 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라든지 치유의 기적 이후에 “대중들에게 떠벌리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보고 임금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면 그를 십자가로 내 모는 일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That is the reason why in several places of the gospel accounts, Jesus warned his followers not to tell the Jews that he was the Christ, nor to spread out the healing experience by Jesus. The more Jewish people recognize Jesus as their Messiah and king spread out, the harder delivering of Jesus to the crucifixion must have been.

요한복음 8장은 이미 유월절을 두 번 지난 시기로서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 사역이 십자가에 가까이 가고 있는 시점이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십자가에 내 몰리셔야 되는 시점이 다가오자,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시비(?)를 거신것으로 볼 수 있다(요8:31). 십자가를 위해 자기를 메시야로 믿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 그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어야 했덧 것이다.

John chapter 8 records that 3 years of Jesus’ public ministry was approaching to the crucifixion because the two Passovers already had passed by the 8th chapter. So Jesus knew the time was approaching to harden their hearts to be delivered to the cross by them. Therefore, in this chapter, Jesus seemed to start the argument with those who believed him (Jn 8:31). For crucifixion, he needed to cast a shadow over his messiahship being accepted more and more among the believers.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과 행위는 마귀의 일이다. 그러나 그 마귀의 일도 그리스도의 주권아래에 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기위해 자기를 믿었던 유대인들의 마음 밭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려서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허락 하셨다. 히브리적 관점에서 보면 백성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려고 그리스도는 사탄을 도구로 사용하였다. 마치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켜 계수하게 하신 것과 같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사탄을 사용했다고 대상 21:1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하 24:1, 대상 21:1)

The thought and act to kill somebody is the work of the devil. Yet the work of the devil is under the Christ’s soverignty. So for crucifixion to happen, Jesus allowed the enemy to invade and to harden them by sowing the weeds in the fields of their hearts. In Hebrew perspective, the Christ used devil to harden the hearts of his people. It is as if the Lord’s anger was kindled against Israel so HE incited David to number Israel. (2 Samuel 24:1) Yet to our astonishment, 1 Chronicles 21:1 revealed that God has employed Satan to do that.

결국 이 논쟁은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시비를 거시되?)...”(요8:30-31a) 로 시작하여

The logical conclusion is this: for the desired result, Jesus initiated the dispute. “As he was saying these things, many believed in him. So Jesus said (start polemic?) to the Jews who had believed him …” (John 8:30-31)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 (요 8:59) 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스도의 음모론이 요한 복음 8장의 숨어있는 비밀과 관련이 있다.

The chapter ends with this result: “So they picked up stones to throw at him, but Jesus hid himself and went out of the temple.” (John 8:59) The secret of John 8 has to do with the conspiracy theory of Jesus.

십자가를 통한 이방인의 구원은 유대인들의 넘어짐과 (불신) (롬11:11) 유대인의 왕의 합작품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은 유대인들에게서 남이니라” (요 4:22) 라고 했을 때, 단수로 “유대인”이라 하지 않고, 복수로 “유대인들” 이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즉 유대인 전체를 의미하기 위해서였다.

Salvation of Gentiles which comes through crucifixion is the joint venture between the fall (disbelief) of the Jews (Rom. 11:11) and the king of the Jews. That is why Jesus said to the Samaritan woman, “Salvation is from the Jews” (Jn 4:22). He didn’t say a Jew in singular but Jews in plural to mean Israel, the whole Jewish people.

결론: 우리 크리스챤들은 요한복음 8장을 보면서 마귀의 거짓에 속아 반유대주의 또는 대체신학으로 결론 내리고 이스라엘을 대적하거나 유대인을 증오하고 모함하는 마귀의 자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리어 이사야 40:1-2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해야 한다. 우리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받은 유대인들을 긍휼히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

Conclusion: We Christians must be careful not to be cheated by the lies of devil so that we get antisemitism or replacement theology out of this text and become the children of the devil who is the adversary against Israel, hating and slandering the Jewish people. Instead, we must comfort His people and speak tenderly to Jerusalem as Isaiah 40:1-2 commanded. We must have mercy and give thanks to the Jewish people who were employed by God for the salvation of the Gen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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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vs. Prayer

We say, “I will do it because I can do it.”
God says, “I can do it because I will do it.”
우린 말하죠, “난 할 수 있으니까 할꺼야”
하나님 왈, “난 할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지”
What matters to me is my ability to do it,
Yet what matters to God is whether He wants to do it or not.
나는 그걸 할 수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걸 하고 싶으신지 아닌지에 관심을 두신다.
The first is called pride, and the second is called prayer.
첫번째는 교만이라 부르고 두번째는 기도라고 부른다.

This is Israeli Style!

This is why I love Israeli style, and I believe this is a biblical style.

 Like Abraham they can leave and start up things without well-planned, written, and organized stuff.  Like David, they prefer direct asking and hearing through verbal conversation to researching through GPA, curriculum vitaes.  Like Yeshua (Jesus), their yes is yes, and no is no; and they’re very uncomfortable with heirarchical bureaucracy.

Leach Sherman Kish’s assessment is so right and true.

5 Tips on What to Expect when Working with Israelis

Whether you’re American, German, Asian or Australian, coming to Israel to work with Israelis will be a unique experience. In order to enjoy your stay, keep focused and not be offended (or offend) in this high pace, energetic and complex culture – you should come prepared.

Business culture in Israel is far more casual and informal than what you are probably used to. Israelis are straightforward, assertive and persistent people. Business is fast-paced and often conducted with a sense of urgency. At the same time, personal connections are of the highest importance as colleagues and business partners make an effort to get to know each other, socialize and have coffee together.

“Israeli society is a poly-chronic culture (relationship-oriented), in contrast to American, British or German  cultures which are mono-chronic (rule-oriented). In Israel’s relationship-oriented culture, open feelings and warm, honest emotions are primary, while efficiency, planning and objective facts may be secondary.” *

Here are some points to take into consideration upon embarking on your next Business adventure to Israel:

1. Communication : Interaction among colleagues is very direct, spontaneous, open and almost family-like. If you are used to formality and to speaking about issues indirectly, avoiding being too honest or using a lot of understatements, you may find that your Israeli colleagues are unsure and even confused as to your true intentions. Israelis appreciate honesty and clarity and will expect you to do the same.They do not deal well with vagueness or subtlety and often interpret them as dishonesty, which will make it much harder to gain their trust.That’s why Israelis may often come across as blunt, aggressive or even rude, but be assured- this is not at all the case!

2. Work Situations: At work, Israelis will usually opt to resolve differences through direct communications, face to face, which may include the use of confrontation, speaking loudly and straightforward criticism. Hand gestures and facial expressions are common.Verbal communication is used to express feelings, thoughts, ideas but also to maintain a working relationship that deals with problems quickly and efficiently. You may often find that after such an encounter, both sides resume their former relationship almost immediately and feel satisfied and ready to move on with the job at hand.

3. Working style: Israelis value quick action to resolve problems, and tend to choose improvisation over careful planning and over detailed working schedules. Plans can change at the last minute to be made more efficient and suit the specific situation. They will always prefer to take initiative over waiting through a long process of bureaucracy which is widely interpreted as a waste of valuable time. Flexibility, innovation, taking initiative and adaptability are highly respected traits as well as the ability to work in a team and communicate openly with your co workers.

4. Punctuality and keeping time: Israelis usually have a more flexible view of time, which subsequently leads to a decreased use of time-tables and agendas as well as imprecise starting and ending times for meetings. Although time tables are made and schedules are part of every project, in reality everyone seems to be running a little late. Meeting a deadline is well appreciated but somehow everyone expects it to be moved a bit before the project ends. Another time-related issue in Israeli meetings is the typical lack of agenda. In some cultures, an agenda might be circulated before the meeting, and it will be closely followed as the meeting progresses. In most Israeli work environments this will not be the case.This however, will actually have very little or no effect at all on the content or efficiency of  the meeting which usually results in getting things done, having decisions made and bringing closure to unresolved issues.

” This might  be perceived by other cultures as easy-going and relaxed, or alternatively inefficient and inaccurate.” **

5. Hierarchy at the work place: Israelis interact very openly across organizational hierarchies, and do not attribute significance to various types of authority in the company **. The atmosphere in most companies is very professional, yet pleasant and friendly at an interpersonal level. The rigid hierarchy you may be accustomed to isn’t the norm in Israel. As in every company, there is a hierarchical management structure, but even a new employee can freely communicate with any rank of management, as long as the matter is presented in a professional manner or if help or support are needed in a certain area. Depending on their importance, decisions are made during either staff or work team meetings. Everyone has the right to express their feelings and opinions about the topic in question as meetings usually take the form of open discussions. If the supervisor is present, people may spontaneously suggest ideas, give their opinions or even complain. Unofficial communication is vastly encouraged. There’s no over use of bureaucracy and the employee doesn’t have to go through a chain of command to speak with someone.

I would like to conclude by sharing a quote:

“Israel is very “civilized” within the framework of a struggling and pressurized Middle Eastern nation that strives very hard to be “Western.”
Israelis have perceptions of time, space and values that are completely different from those of North Americans. Israelis see Americans as artificial and square, when they are actually just showing respect. Americans think Israelis are arrogant, rude and pushy, when in reality they are being direct and honest. Israel is a very small country whose population is one big family. In a family people can be as direct and honest as they want. But now that family members are selling their goods and services outside the clan, Israelis are adapting.”

Joel Leyden \ TIME Magazine

Thank you for reading!

* http://www.israelnewsagency.com/doingbusiness.html

** http://www.israemploy.net/Work_Culture/index.php?pf=yes

Thorny flowers in Jerusalem 예루살렘의 가시 꽃들

 

“As the lily among thorns, so is my love among the daughters.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Song of Songs 아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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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511-185948.jpg“Some sat in darkness and the deepest gloom, prisoners suffering in iron chains, for they had rebelled against the words of God and despised the counsel of the Most High.   So He subjected them to bitter labor, they stumbled, and there was no one to help.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자가 없었도다 p60511-183358.jpgp60511-175919.jpgp60522-093131.jpg

Then they cried to the Lord in their trouble, and he saved them from their distress.  He brought them out of darkness and the deepest gloom and broke away their chains.  이에 그들이 그 환난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p60522-100245.jpg

Let them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unfailing love and his wonderful deeds for men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 Psalm 시편 107:10-15 p60523-094553.jpg

 

 

 

A Korean saved a Jew in HIS time

It was a warm afternoon on Tuesday, May 10, 2016. I left the library early afternoon to go home and began walking toward the tram station on Ammunition Hill in Jerusalem. While I was waiting on the stop sign, i suddenly changed my mind to take a bus instead of a tram. 2016년 5월 10일 화요일, 아주 따스한 오후였습니다. 저는 그날 귀가하기위해 도서관에서 오후 일찍 나와 예루살렘의 어뮤니션 힐 전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서 있는 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전철대신 버스를 타고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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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I turned to the bus station at Ammunition Hill and stood there waiting for the bus 68. Some time has passed and the bus still did not come, whereas i saw several trams passing by already, so i began to regret of my quick change. After a few more minutes, a bus was approaching, but it was a bus 66! “A bus 68 is what i need… ,” I murmured and sighed. After letting the bus 66 pass, i waited for another 10 minutes. I could not bear anymore of the escalating temperature, the smell of air pollutions, and annoying honkings on the street. I changed my mind again to take a tram. Blaming myself on all the crossroads, i ended up taking a tram to go home in Pisgat Zeev. 그래서, 어뮤니션 힐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68번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좀 지났는 데도 버스가 오질 않았습니다. 반면에 전철은 벌써 몇대가 지나갔고요. 버스로 바꾼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이 더 지나자, 버스 한대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66번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건 68번인데…,” 혼자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죠. 그 버스를 보낸다음, 한 십분을 더 기다렸습니다. 도로에 빵빵 거리는 경적 소리, 자동차 매연가스 냄세, 더운 날씨..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다시 전철을 타기로 마음을 또 바꿨습니다. 걸어가면서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결국 집이 있는 피스갓 즈에브 방향으로 가는 트램을 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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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lways, I got off the tram at Pisgat Zeev Center and walked up the hill and then downhill toward my house at Dov Saddan and Shlomo. 늘 그랬듯이, 피스갓 즈에브 센타에서 내려 언덕 위를 올라가고 다시 도브 싸단과 쉴로모 거리에 있는 집 방향으로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I was walking down the street, singing of the beauty of the Judean Wilderness over the hill. But all of sudden, i heard someone screaming across the street! The sound was a really urgent shrieking of a guy! I immediately looked around and found out I was the closest one to him on the street, so I ran toward the Jew like an athlete at sprint zone! 언덕 너머 유대광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더군요! 그 소리는 분명 비상사태에 놓인 남성의 비명소리였습니다! 전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그 거리에서는 제가 가장 가까이 있음을 깨닫자 마자, 저는 전력질주하여 그 유대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As soon as i approached the guy, O My God!, his finger was slammed by a car door! I threw my right arm and grapped and opened the door! He pulled out and shrank his body, trying to resist the pain spreading out his whole body. O my God, his finger got deformed and bruised with some blood, and i did not know what to do. This was what happened to him. He was standing in front of the hood and leaning toward the front window and scrubbing the window with soap water with his left hand grabbing the edge of the passenger’s door. Whether it was the strong wind or the steep descent road, i don’t know. All of a sudden, the passenger’s door got shut and slammed his finger. He could not move from the front of hood to the side door because that meant he cracked his wrist and his finger! He literally could not move his body at all with one finger got squeezed!! While he was fighting with the pain, not being able to do anthing, I appeared in that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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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in a minute, people on the street started gathering and tried to help him. Somebody called police and others called somebody, and someone exclaimed, “Baruk Hashem! Thank God!” 그 사람에게 달려가자마자, 오 마이 갓! 그의 손가락이 차 문에 낀 것이었습니다! 전 순간적으로 팔을 뻗어 문을 잡고 확 열어주었습니다. 그는 손을 빼더니 몸을 웅크리고 온 몸에 퍼지는 고통과 싸웠습니다. 오 마이 갓, 그의 손가락은 움푹 패였고, 피가 좀 나면서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실, 그는 왼 손으로 차의 승객 쪽 문의 샤시를 잡고, 후드 쪽에서 몸을 기울여 앞 창문을 닦고 있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 지, 아니면 확 기울어 있었던 도로 때문이었는 지, 문이 닫혀버린 후 그의 손가락이 낀 상태에선 몸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거리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를 도와주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찰을 부르고, 또 다른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누군가는 “바루크 하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하며 소리 지르더군요

As the chaos calmed down, I thought my job was finished. ” If i linger here, i would be seen as if i was waiting for the rewards or money. I better go now.” As soon as i decided to leave after praying for him, they looked at me and seemed to talk about me in Hebrew. Well, I felt good although i could not understand their compliments(?). I wrapped my two hands on his hurt finger and prayed for thanksgiving and healing in Korean. And I left there, saying, “Baruk Hashem, take care of yourself!^^”. 이 정신없는 사태가 진정이 되어가면서 전 제 임무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더 머뭇거리면 뭔가 돈이나 보상을 바라는 자로 비춰질 수 있겠다, 지금 가는 게 낫겠다.” 그 사람에게 기도해주고 그 자리를 뜨기로 마음 먹자 마자, 사람들이 절 쳐다보고 히브리어로 뭔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글쎄요, 그 칭찬(?)을 이해하진 못했어도 기분은 좋더군요. 전 그 분의 다친 손가락을 아래위로 감싸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치유의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루크 하솀, 몸 잘 돌보세요!^^” 말하며 그 자리를 떴습니다.

On the evening of the crazy day, at 8:00 PM, I heard the siren of Yom Hazikaron, which is Israel’s Memorial Day for the fallen soldiers and victims of terror. I was drawn to my backyard to meditate on the sound. Over the fence, I could see all the cars stopped and all the noises of men and vehicles stopped at the very moment. I thought, “Well, today i was a soldier who saved the Jew. ” 완전 정신없었던 그 날, 저녁 8시에, 욤 하지카론의 싸이렌 소리가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군인들과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스라엘의 ‘군인의 날’ 이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에 이끌려 집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담 넘어보니, 모든 차들이 다 서있는 게 보이더군요. 그 순간에 모든 교통수단과 사람의 소리가 중단되고 조용~ 했습니다. 전 생각했죠, “음.. 오늘 나는 그 유대인을 구한 용병 한국인 병사였다… ㅋ ㅋ ㅋ ”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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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saw a pizza delivery guy stopped his motocycle in front of the bus stop and stood still at the siren, I suddenly realized that the bus I should have waited for on that afternoon was not 68, it was 66!! “Shishim ve Sheshi (Sixty Six)” How often have I heard this sound from the bus stop which is right under my house! How could I forget it? How could I miss it? God began to expose one by one how He had orchestrated everything on the Memorial day. Yes… I had to let the bus 66 pass because…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서 피자배달하던 청년이 싸이렌 소리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잠잠히 서 있는 걸 보니, 문득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탔어야 하는 버스는 68번이 아니라, 66번이었다는 것을요!! “쉬쉼 베 셰시 (육십 육)” 집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부터 이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들었는 데… 아니 어떻게 이걸 깜빡할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이걸 놓칠 수가 있었지? 하나님께선, 그 날 벌어진 모든 사건들을 어떻게 다 주관하셨는 지, 하나하나 보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맞습니다… 전 그 66번 버스를 보냈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God is never late, and He is never early either. He is always on time. On the very moment when the finger got slammed by the car door. 하나님은 절대 늦지도 않으시고, 일찍 오시는 분도 아니니까요. 그 분은 항상 정시에 옵니다. 자동차 문이 손가락을 찍는 바로 그 순간에 말입니다. p60414-184439.jpg

Is it better to live in the wilderness? Proverbs 21:19 광야에 사는것이 차라리 낳으니라?

“It is better to dwell in the wilderness, than with a contentious and an angry woman.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 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Proverbs 잠언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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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ever i had a dispute with my wife, i have always wanted to go to the wilderness.
However, there was no “wilderness” where we lived.  There was not in Nashville, in Los Angeles, in Montgomery, in Seoul, in Jeju Island, in Lynchburg, in Jin-Hae, nowhere except in JERUSALEM!!!  O how i long for the day!  One day, i had a big argument with my wife, and the time had come.  So, I went down to the Pisgat Zeev valley that leads to the Judean wilderness.
아내와 다툴때마다, 늘 광야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살았던 곳에는 광야가 없었습니다.  내쉬빌에도 없고, 로스 앤젤레스에도, 몽고메리에도, 서울에도, 제주도에도, 린치버그에도, 진해시에도, 아무 데도 광야는 없었죠.  그러나 예루살렘엔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던가요!  어느날, 아내와 크게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 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대광야로 연결되는 우리동네 피스갓즈에브의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1463399549842.jpg
 I thought the wilderness was a cold area, so i wore a long shirt.  Yet, the more i walked down the path, the more the temperature got hotter.  I thought, “how much more hotter in the wilderness if here is so hot?”   Finally, I found a good flat rocky place to sit down.  “Maybe, David might have sit here three thousand  years ago to escape from the quarrelsome wife, Michal.” I imagined.   I burst out in my prayer, “Abba Elohim, i would rather live alone here!!  I want to hear your anwer! ”  전, 광야는 추운 곳이라 생각해서 긴 팔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더 내려가면 갈수록 온도가 올라가더군요.  아… 이 골짜기도 이렇게 더운데 광야는 얼마나 뜨거울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평평한 바위에 앉을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삼천년전에 다윗도, 다투기 좋아하는 아내 미갈을 피해서 이 곳에 와서 앉았을 수도 있겠다…” 상상해보았습니다.   기도하며 소리 질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차라리 여기서 혼자 사는 게 낫겠습니다!!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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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was no voice, nor answer.  It was very hot and quiet.  After about 30 minutes, something was moving in front of my eyes.   It was a mountain gazelle !!  아무 소리도,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뜨겁고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한 삼십분이 지났을까요?  제 눈 앞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게 포착되었습니다! 광야 사슴이었습니다!!p60426-184443.jpgThey were watching cautiously together at me, so quietly moving together one step at a time, and gently eating together inside of the reeds.  Interestingly, they always stayed together as a couple!  그놈들은 저를 아주 조심히 쳐다보고, 아주 조용히 한발짝, 한 발짝 같이 움직이고, 그 풀 숲안에서 아주 조용히 함께 뭔가를 먹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항상 두 마리씩 짝을 지어 함께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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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t thirsty and dizzy under the sun.  I pondered again and again the  scene of the sophisticated creatures.  And it was as if God was speaking to me, “Speak gently to your wife, move together with her slowly and watch carefully together, you are one…”  The unspeakable joy came to me!   I thought i was able to live again with my wife.  Here is my Conclusion:  “Go into the wilderness and you will come back home.”  How wise our God is! 내리 쬐는 태양아래에서 목이 마르고 어지럽기 시작했습니다.  그 섬세한 피조물들의 장면을 보고 또 보고 묵상했지요.  마치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부드럽게 말하라, 함께  천천히 움직여라, 함께 주의 깊게 보아라, 너희들은 하나이다.”  알 수 없는 기쁨이 찾아 왔습니다!  이제 다시 아내와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광야로 나가 보세요.  다시 집으로 돌아 올 겁니다.”   우리 하나님 참 지혜로우십니다! p60425-123241.jpg

The ancient city of Jericho 고대 도시 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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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hurch went to a retreat at Jericho, one of the oldest cities in the world history!  At first, i was a little disappointed because it looked so much like Palm Springs in California.  On the next day while i was visiting the historical sites inside the city, i made an oath that i would never dare to compare it with any other cities.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수련회를 갔답니다.  세계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의 하나, 여리고로!!  처음 봤을 땐, 캘리포니아 주의 팜 스프링스 도시와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서 실망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도시 내의 고대 유적지를 방문하고 나서, 앞으로는 절대 이 도시를 다른 도시와 감히 비교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20160424_114435.jpgSycamore fig tree in Jericho where the tax collector Zacchaeus climbed up to see Yeshua.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위해 올라갔다는 돌무화과 나무입니다.

“And when Jesus came to the place, he looked up, and saw him, and said unto him, Zacchaeus, make haste, and come down; for today I must abide at thy house. And he made haste, and came down, and received him joyfully.”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위를 쳐다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다 하시니 그가 속히 내려와 즐겁게 그를 영접하거늘  __Luke (누가복음) 19:5-6

Someone told me that after Zacchaeus heard of Yeshua’s intention of stay in his house, he said, “I will Zacchaeo dinner today (Zacchaeo- same sound as Korean dialect which means – i will buy you or serve you)! ^^”   삭개오가 자기 집에 머물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오늘은 제가 저녁 삭개요 (살게요)! ^^”

This is a mulberry tree near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which should not be confused with a sycamore fig tree. 돌 무화과 나무와 헤깔리지 말아야겠죠?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 근처에 있는 “뽕나무”입니다. p60508-133429.jpgp60508-133423.jpg

Praise God! I finally stepped on the ground where the wall of Jericho tumbled down by the shouts of Israelites!  할렐루야!  드디어, 이스라엘인들의 외침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던 그 터에 발을 디디었습니다!146334043543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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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the people shouted when the priests blew with the trumpets: and it came to pass, when the people heard the sound of the trumpet, and the people shouted with a great shout, that the wall fell down flat…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     Joshua 여호수아 6:20

 

I was able to literally see the ancient heaps of stones and dirts of the wall.  The moutain on the back is known for “Mt. Temptaion” where Yeshua was in the midst of Satan’s temptation.  It is a part of Judaen wilderness hills that connect the higher city of Jerusalem to the lower city of Jericho.   그당시 무너졌던 흙과 돌 무더기를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은 “시험산”이라고 불리는 데,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죠.  이 산 자락은 유대 광야의 많은 언덕들의 한 부분으로서, 높이 위치한 예루살렘 도시와 낮은 여리고도시를 연결하는 산 입니다.p60515-114206.jpg

Right in front of the wall, there was a water reservoir which the prophet Elisha purified with salt while he was waiting for his disciples in Jericho. 바로 그 앞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여리고에서 제자들을 기다리면서 그 성읍의 물을 소금으로 정화시켰던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 He went out to the spring of water and threw salt in it and said, “Thus says the LORD, ‘I have purified these waters; there shall not be from there death or unfruitfulness any longer.’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__2 Kings 열왕기하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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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im Sameach! 해피 부림절~

“Purim Sameach ~~” I heard many Israelis greet each other with this pleasant phrase.  It meant “Happy Purim~!”  Since the first Purim feast held in  473 B.C. in the Persian empire, Jews have observed it for almost 2500 years!  Wow!   “부림 싸메앜~~ (부림절 행복하게 즐기세요~)” 부림절 기간에 이 발랄한 인사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첫 부림절 축제를 기원전 473년 페르시아 제국에서부터 해왔으니 유대인들은 이 축제를 거의 2500년동안 해 온 셈입니다. 놀랍습니다.12936482_10209879357367146_4894277428539815870_n

During the Purim holidays, i saw a group of people followed noisily a boy who was carrying the Tanakh (Old Testament).  I asked in elementary Hebrew to one of his group, “Ze Tanakh (Is that the Old Testament)?”  He said “Ken (Yes)!”  After that he explained to me in Hebrew what was going on but i was still alien from the mysterious language.  Maybe he was going to “13 years old adult ceremony” or to a local synagogue for Purim worship, I don’t know.  I just loved to see how much they cherish the Scriptures.     부림절 기간에 한 소년이 구약성경을 담은 통을 들고  앞서가고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그를 뒤 따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명에게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히브리어로 물었습니다. “저게 구약성경이죠?”  “네!” 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런 다음 그 사람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히브리어로 설명을 해 주었지만  여전히 그 신비로운 언어는 제게 낯설었습니다.   아마도 13살 성인식에 가는 중이었는 지 아니면 부림절 예배를 위해 회당에 가는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소중히 대하는지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It was on the evening of March 25, when the happy atmosphere of the Purim holidays was culminating into Shabbat. I was walking with my son by the trash container to take my son’s friend home and right in front of my eyes, a husband and wife were brawling each other.  He was on the street and she was on the window of the third floor.  Staring upstairs, He yelled, “Ma baiah!!! (What’s the problem!!!)” She yelled back something.   Looking with mouth open, we were too embarrassed to move.  Suddenly the guy turned to me and said something in Hebrew.  He seemed to ask for my help.  So I expressed my willingness to help and asked, “Ma baiah?^^ ( What is the problem?^^)”  He seemed to say that because he was a Jew he could not labor on Shabbat.  So I said in Heblish (Hebrew+English) “Ani oheb eikh Jehudim KEEP  Shabbat! = I love how Jewish people keep the Shabbat!” And he said, “Ata Jehudim? (Are you a Jew?)” “Lo! (No) Ani Koreanit  (I am a Korean)” i said. “O~~ Tov Tov  (good good)” he said, and he signaled to follow him, so we followed excitedly through the stairs to enter his apartment.20160429_212859

3월25일 저녁, 부림절의 분위기가 절정을 이루고 안식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동네 쓰레기통 옆을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 눈 앞에서 한 남편과 부인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도로에 있었고 부인은 3층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위를 쳐다보며 “도데체 뭐가 문제냐고?!!”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부인도 소릴 지르며 맞 받아쳤습니다.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던 우린 너무 당혹스러워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분이 저를 바라보며 히브리어로 뭔가를 말하더군요.  자기에게 먼가 도와달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기꺼이 도우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뭐가 문제이죠?^^”  그는 자기가 유대인이기에 안식일엔 노동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히블리쉬로 (히브리어 +잉글리쉬) “아니 오헤브 에이크 예후딤 킾 샤바트!” (저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그러니 그가 말했습니다, “아타 예후딤 (당신 유대인이요)?”  “로 (아뇨)! 아니 코레아닡 (전 한국사람임다)!” 라고 대답하자 그는 “오…톱 토브 (좋아 좋아) ” 하면서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기대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따라 그의 아파트 안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At the entrance of the home, the yelling wife kindly let us in and we were amazed at the beautiful interior and furniture inside. The best thing was that his sons and daughters and grandchildren all welcomed us with smile, and at the same time their shyness and humbleness made the most shy aliens feel comfortable.  집 입구에 서니, 아까 소리 지르던 그 부인이 우릴 안으로 들였고, 우린 그 집 안의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가구에 놀랐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자녀들과 손주들이 미소지으며 우릴 환영해 준 것이었고 동시에 그들도 수줍어하며 겸손하게 우릴 대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수줍어 하고 있던 우리 이방인들 (저와 두 아이들)의 마음이 한층 편안해졌습니다.

The guy introduced me to his big family and i shook hands with a couple of sons and smiled at daughters who were holding babies.  They seemed ready to celebrate Shabbat dinner. I felt like I was invited to the dinner.  The yelling wife shyly directed me to the corner of the kitchen and pointed the microwave.  So what? I thought.  I lingered to do the task.  The husband seemed a little frustrated and approached me and pointed his finger to the back of the microwave.  So what?  I was more frustrated.  I did not get it until he gestured “plugging in.”  So i picked up the cord and plugged in.  20160429_230527Then I waited for the big task which this big family couldn’t do without me.  After a moment, the husband and wife brought two bags filled with candies and cookies and gave it to my son and his friend. They got so happy and I saw some Israeli chocolates which looked pretty expensive.  Finally i realized it was the task to pick up the power cord and plug in!  To count plugging in as labor may seem foolish but i came to admire how faithfully Jews in Israel try to keep the Shabbat.  The wife got happy with the microwave and the guy got happy with his happy wife, we got happy and everybody got happy!

그 분은 저를 그의 대가족 식구들에게 소개를 시켜주었고 저는 몇몇 아드님들과 악수하고 애기를 안고있던 따님들 하고도 미소로 인사했습니다.  안식일 저녁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저녁만찬에 초대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소리지르시던 부인이 수줍어하며 절 부엌 모퉁이로 인도하더니 전자렌지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뭘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남편되시는 분이 조금 답답해하며 제게 오더니 손가락으로 전자 렌지 뒷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니 그래서 어쩌란거지??” 소통이 안되니까 좀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그 분이 두 손으로 플러그를 꽂는 제스쳐를 하고서야 “아…그걸 좀 꽂아 달라는 거였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 코드를 집어들고 전원에 꽂았죠.  그러고선 내 도움 없인 이 대가족도 할 수 없는 그 큰 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이 부부는 사탕과 쿠키가 잔득 든 종이가방 두개를 가져와  아들과 아들친구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고 저도 제법 비싸보이는 이스라엘 쵸콜렡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큰 임무는 플러그를 집어들어서 전원에 꽂는 것이었습니다!   플러그를 꽂는 것도 노동으로 간주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 미련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신실하게 안식일을 지키려고 노력하는가…그 모습을 보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전자렌지때문에 그 부인은 행복해햇고 행복해진 아내때문에 그 남편분도 행복했고 우리도 행복했고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Can we hear the voice of the Lord?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나요?

Of course!  This is not a matter of whether it is possible. The Bible commands it!!  “Hear attentively the noise of His voice and the sound that goes out of His mouth!” (Job 37:2)  Adam and Eve heard the voice of the Lord.  “And they heard the voice of the Lord God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the Lord God called unto Adam, and said unto him, Where are thou?”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Gen.3:8-10) God had conversations with Abraham, Moses, David, Samuel, and prophets.  Are they very special people? not that special. James says, “Eliah was a man subject to like passions as we are…”(James 5:17)  Jeshua said, “… and the sheep hear his voice: and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John 10:3).p60430-233907.jpg

물론이죠!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욥37:2)  아담과 하와는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창3:8-10)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사무엘과 선지자들과 대화하셨습니다.  그들이 특별해선가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야고보서 5:17은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그가 양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을 인도해 낸다”라고 요한복음 10: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Then, why can’t we hear His voice?  Because we are far away from God.  If a sheep plays in the valley while the other sheeps play near the shepherd on the hill, the sheep in the valley will hardly hear the shepherd’s voice.  When we are distracted by busy business of our daily lives other than GOD (HaShem), We place ourselves in a remote place from God and lower our chances of hearing HIS voice.  For this reason, God sometimes breaks our idols that keep us busy, takes what He has once given, and freezes our screens which have stolen our eyes.  그럼 우린 왜 그의 음성을 못 들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양들은 다 언덕 위에 있는 목자 곁에서 놀고 있는 데, 혼자만 계곡안에 들어가 놀고 있다면, 그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삶의 분주한 일들로 정신없이 살고 있다면 우린 하나님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에 우리 스스로를 위치시킨 겁니다.  그러면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확률은 확 떨어지지요.  이런 이유때문에, 하나님은 때론 우릴 바쁘게 돌리고 있는 우리의 우상들을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한번 주셨던 것을 다시 가져 가기도 하시고, 우리의 시선을 훔쳤던 스크린들을 중지시켜 버립니다.       p60315-164230.jpg

When I was sitting and waiting for my turn in the post office, i enjoyed a free lessson of Hebrew numbers just by watching the number on the screen and hearing the number announcement.  As it takes over an hour, i slowly began to lose my attention, thinking that my turn would not come soon.  I killed the time sulggishly with my smartphones.  Then… Suddenly, the screen got frozen!  p60315-164803.jpgGuess what!  Everybody dropped their phones, lifted their heads, and fixed their eyes upon the screen listening to the voice from the announcement! It was as if a general commanded soldiers ,  “Attention!” 예전에 우체국에서 앉아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크린에 나오는 히브리어 숫자와 그 숫자를 발음하며 방송하는 걸 듣고 있노라니 히브리어 숫자 무료 강의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어가자, “내 순서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 하면서  서서히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스크린이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기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며 방송에 나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더군요!   마치 장군이 병사들에게 “차렷!” 한 것처럼요.

David said, “their heart is as fat as grease; but I delight in thy law.  It is good for me that I have been afflicted; that I might learn thy statues.”  (Psalm 119:70,71)  When the affliction comes on our screen, our visual mode automatically changes to audio mode.  So, are you distressed and broken hearted like i am many times?  Then God must be near and chances are higher to hear.  My affliction is God’s diet program for my greasy heart!  다윗은 시편에서 고백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의 스크린에 고난이 오면, 눈으로만 보던 모드에서 귀로 듣는 모드로 자동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자, 여러분 오늘 스트레스 만땅이십니까?  저도 종종 그러는 데 혹시 여러분도 마음이 상하셨습니까?  그럼, 하나님이 가까이에 계신다는 증거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내게 닥친 고난은 나의 살진 마음을 위한 주님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입니다!

“The Lord is near unto them that are broken hearted, and saves those who have contrite spirit.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Psalm 시편 34:18